자기개발서의 가치는 어디서 오는가?
Don`t be cynical
한창 자기개발서적이 유명할 적에, 금세 이에 대한 비관론이 대두되었다. 성공의 일부분을 확대해 스토리를 만들었을 뿐이며, 책의 내용이 기똥차서 자연스럽게 주목받은 것이 아니라 마케팅을 통해 메이저 서점에서 가장 비싼 매대에 배치하고,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 등에 돈을 써 시너지를 낸 결과일 뿐이라며 장삿속에 놀아나지 말라고 권고했다.
예를 들면, 한 권의 책에 담긴 방대한 스토리를 한두 문장 정도로 일축하는 방식으로 비판했다. "결국 열심히 노력하라는 거잖아", "진심을 다해 소통하라는 뜻이네" 같은 말로 당연한 소리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고 깎아내렸다. 당시 유명했던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책을 보며 나도 절대 자기개발 도서 섹션엔 얼씬도 않아야지 하고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한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요즘 필요에 의해 다시 자기개발 도서를 보기 시작하면서 이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지금도 그 책들을 요약하면 당연한 소리밖에 안 남긴 하지만, 그 메시지가 드러나는 과정에서 진실성을 느끼고 공감하게 되면 지독하게 추상적인 그 메시지가 내 펀더멘탈로 자리 잡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펀더멘탈로 자리 잡은 가치는 내 태도와 행동을 결정한다. 이는 나를 정의하는 구성 요소에 그 가치가 포함되었다는 뜻이고, 실로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의 사고가 갑자기 확장되고 행동에 반영되는 경험은 놀랄 만큼 어렵다.
나아가기
물론 자기개발서에도 걸러서 들어야 할 부분들이 많다. 이 부분에 대해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던데, 나는 구체적인 사례와 방법론을 제시하며 효과가 있었다고 하는 부분들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변인 통제는 개나 줘버려서 상관관계가 전혀 없어 보이는 얼토당토않은 데이터를 지표랍시고 들이대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구체적인 사례가 나오면 최대한 흐린눈을 하고 보는 편이다. 이 사람은 이렇게 활용했구나 하고.
다만 그 경험과 그 과정에서 사용된 방법론을 무시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건 검증되지도 않았고, 이 사람의 상황에서만 맞는 것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하고 방법론이 이와 일맥상통하여 액션하기에 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일단 해보고 조금씩 나에게 맞게 고쳐 나가며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요약하기
솔직히 자기계발서를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요약하게 되는 것 같다. 추측컨대 당장 적용할 거리를 찾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서점에서 파는 2만 원어치 처방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를 복용하여 생산성 확보나 신뢰성 회복, 자존감 개선 등을 하기 위해서라고. 그런데 자기개발서를 요약해보면 항상 별것도 아닌 이야기를 거창하고 그럴싸하게 써둔 게 대부분이다. 심지어 그 대부분이 당연한 이야기를 경험과 함께 풀어써놓는다. 하지만 당연한 건 없다. 과정에서 메시지가 얼마나 진실된지, 실효성이 있는 방법론인지 판단했으면 좋겠다.
혹시나 오해할까 봐 언급하자면, 나도 책을 읽고 요약을 한다. 하지만 결코 "결국 이러쿵저러쿵 해서 잘 살라는 뜻"이라고는 쓰지 않는다. 최대한 줄글로 풀어서 쓰고, 추상화를 일부러라도 덜한다. 어떤 자기개발서도 한두 줄로 요약할 수 없다. 그렇게 추상화해서 요약하면 성경책도 "사랑과 정의로 선을 행하라"라고 요약하고 덮어버릴 수 있는 거다. 물론 추상화해야 마음속에 담아두고 쉽게 꺼내 쓸 수 있지만, 이를 위해 살을 너무 많이 깎아낼 필요는 없다.
공감하기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으로 유명한 작가 채사장의 철학도서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에서, "개개인의 경험에 따라 어떤 책은 도움이 되지 않거나 잘 읽히지 않는다"고 하며 읽기 싫거나 안 읽히는 책은 과감히 닫으라고 권한다. 가령 중학생 때 『논어』를 읽을 땐 뭔 소리하는지 하나도 몰랐는데, 이 나이 먹고 보니 하나하나 단단한 중심이 있고 깊이 공감하여 눈을 지긋이 감게 만드는 일화들인 것처럼 말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보면, 우리가 쓰레기라고 손가락질하던 수많은 자기개발서들은 실제 비슷한 경험이 있거나 자주 관찰해서 그 경험에 깊게 공감하고 제시된 방법론에 실효성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인생을 바꿀 만한 메시지를 전달했을 것이다. 만약 읽었을 때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면 우리의 상황은 아마 그 책과 그리 맞지 않을 수 있다.
마치며
어제는 『Crucial Conversations』이라는 책을 읽었다. 커뮤니케이션에 관련된 자기개발서고 충분한 사례들로부터 힘을 받아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는 명저다. 나는 서문부터 푹 빠져 카페에서 5시간 동안 화장실도 참아가며 읽었다. 최근의 대화들을 하나하나 곱씹어 가며 공감했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는데, 더 놀라웠던 사실은 이 책의 초판은 2002년에 나왔고 번역본 초판은 2013년에 나왔지만, 나 같은 자기개발서 냉소주의자들의 시선 때문인지 도서관 귀퉁이에서 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도 우리 조직의 새로운 리더의 QnA 세션에서 누군가 "당신에게 영향을 준 책 Top 3는 뭔가요?"라는 질문에서 이 책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이 책은커녕 영영 이 부류의 책에 손도 대지 않았을 것이다.
뭐, 아직도 책 시장에 장삿속이 많은 건 인정하겠다만, 과거의 시니컬한 시선이 조금은 바뀌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