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항 속의 금붕어

갓 입사한 사람의 생각

어항 속의 금붕어 라는 비유가 있다.

어항은 관상용 물고기가 사는 집이다. 보통 투명한 유리나 아크릴로 되어있고, 잘 생활할 수 있게 산소나 먹이 같은 리소스가 전폭적으로 투입된다. 보통 가정집이나 음식점, 회사 사무실 등에 놓는다. 그리고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조직 구성원들이 다 볼 수 있는 거실이나 라운지 등에 위치한다.

구성원들은 오고 가며 쫄깃 보기도 하고 대놓고 구경하기도 하지만 먹이나 수조 청소 담당자가 아닌 이상 대부분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냥 풍경의 일부다.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지 않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생각한다.

http://t1.daumcdn.net/brunch/service/user/aVyy/image/htEspPlvIwU2P6JHRnU8rCJW6f0.jpeg라라아쿠아 제공

그럼 금붕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모두가 자주 오가는 훤한 장소에 투명한 유리로 된 상자에서 발가벗고 유영한다. 이렇게만 들으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위에서 서술했듯 감시자인 인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밥을 평소보다 많이 먹던 꼬리를 세차게 흔들던 중요하지 않다. 동상이몽이라고나 할까.

신규 입사자의 마음이 그렇다. 마치 저 어항 속의 금붕어와 같단 말이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다들 현재 속해있는 조직에서의 첫날을 떠올려보자. 마치 저 어항 속의 금붕어 가 된 듯이 모두가 날 쳐다보는 것 같지 않았는가? 딱히 오픈된 공간이 아님에도 어디선가 날 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새로운 사람이기 때문에 다들 한 번씩 힐끗 보고 가기는 하니 틀린 말은 아닐 수 있다.

신입이든 경력이든 관계없이 회사에 갓 들어온 어항 속의 금붕어 는 괜스레 하고 싶은 말에 3번 4번 필터를 걸어 이야기하고, 행동 하나하나에 마음속 승인을 받는다.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괜찮았던 행동이 지금 내가 속한 이 조직에서는 안 좋은 행동일 수 있고, 마치 불문율처럼 군림하던 규칙이나 화법들이 이 회사에서는 무례하거나 무능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들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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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작은 업무도 버겁기 마련이다. 이곳만의 문화, 소통방식, 업무 플로우, 사후처리, 평균 업무 산정 시간, 문서화할 분량, 코드베이스 및 모듈, 코드 작성 스타일, 리뷰 기간 등 기존 조직원과 비슷한 퍼포먼스를 내기 위해 파악해야 할 항목이 산더미다.

그래도 온보딩이라고 부르는 이 기간에는 전폭적인 지지와 응원을 받는다. 리소스도 더 할당받고 배려를 받는다. 우리가 겪는 이 불안함과 생소함을 인사팀에서도 다 아시니까 그러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 미리 하나부터 열까지 다 준비해 주시고 물어보면 다 알려주며 세상에서 제일 친절하게 대해주시지만 쉽지 않은 게 이 기간이다.

리버스 판옵티콘

*혹시 오해가 있을까 봐, 회사를 감옥에 비유하는 게 아님을 먼저 밝힌다.

미셸 푸코의 "감시의 처벌"에서 소개된 판옵티콘이라는 개념이 있다. 중앙에 강한 빛을 내는 광원이 있고, 이를 둘러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의 형태로, 죄수들은 간수가 그들을 감시하고 있는지 아닌지 강한 빛 때문에 알 수 없어 효율적인 형태라 말한다.

나는 이 글을 쓰며 이러한 상황이 판옵티콘의 역(reverse) 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나를 삥 둘러싼 수십 개의 광원, 나는 그들을 제대로 보기 힘들지만 그들은 손쉽게 나를 본다. "새로 온 사람"이라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말이다. 그들이 파악해야 할 사람은 나 하나지만, 내가 파악할 사람은 수십 명이다.

http://t1.daumcdn.net/brunch/service/user/aVyy/image/ulTBm_s8Vdc50UqHw_H69mY9aoU.png판옵티콘 이미지(나무위키)

다행히 온보딩은 그리 길지 않다. 어떤 이는 단 며칠 만에 소프트 랜딩에 성공하기도 한다. 정말 처음에만 어리숙하고 실수를 많이 하지만 점차 판옵티콘의 중앙에서 바깥으로 이동하여 같은 위치에서 생활하게 된다. 어쩌면 초반에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사건들을 시스템의 측면에서 막아내고 동화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며

나는 연차에 비해 회사 온보딩을 여러 번 경험했다. 근데 그때마다 업무 자신감과는 별개로 괜히 위축되고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발버둥 쳤던 것 같다. 반대로 내가 기존 멤버일 땐 그저 "그저 3개월 안에 잘 적응만 해주셨으면.."이라는 간단한 생각만 했는데, 같은 공간에서 참 다른 생각을 한다.

고무적인 사실은 이 기간을 잘 견디면 확실히 그 조직에서 만큼은 단단한 일원이 되어 날개를 달 수 있다는 점이다. 회사에서 하루만 일해봐도 혼자서는 뭐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그들의 문화, 소통하고 성과를 내는 방식에 녹아들었다는 것이니 첫 단추를 잘 꿴 것이다.

나도 곧 새로운 조직에서의 온보딩을 앞두고 있다. 다시 어항 속의 금붕어로 돌아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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