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회고 - 3. 왜 그랬을까

내 아까운 세월

1년 동안 후회되던 것들 적어보고, 훌훌 털고 다신 그러지 말자.

학창 시절에 공부할 때도, 내가 푼 문제에 확신이 없어서 몇 번이나 검산을 하고 기억을 되뇌다가 시간과 생각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써서 시험을 그르친 적이 몇 번이나 된다. 이건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 조바심이 일을 그르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초엔 내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심했다. 이력서를 보자니 타의 긴 하지만 1년을 채운 직장이 한 개밖에 없을 정도로 철새처럼 회사를 옮겨 다녔고,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도 사기 취업(약속한 직무와 맞지 않음)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 었다. 때마침 IT/스타트업 시장이 최악의 겨울을 보내고 있는 터라 안 그래도 힘든데 더 힘든 그런 암울한 상황에서 제출한 이력서는 거의 100개가 넘어가던 시점. 그만큼 이직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당시 심경은 지금도 기억나지만 기록으로도 잘 남겨져 있다. 4평 원룸과 스터디 카페만을 왔다 갔다 하며 이력서 작성과 코딩 테스트 공부, 면접 공부만 하며 지냈다. 이미 나는 할 만큼 했는데, 더 들어갈 공간이 있어도 너무 고통스럽게 들어가던 그 시점에 너무 절실하니까 정신이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나는 정신을 부여잡고 뭐라도 해보려고 발버둥 친 거고. 근데 그게 틀린 대응이었다는 사실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행을 떠났을 때 알게 되었다.

인생에는 Variable과 Constant가 있다. Variable은 내가 바꿀 수 있는 요소고 Constant는 바꿀 수 없는 요소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면 고통스럽고 결과도 나오지 않는다. 할 만큼 했다면 더 이상 발버둥 치지 말고 쿨하게 놔주자. 그 시간에 내가 바꿀 수 있는 다른 것을 바꾸면 되고, 내가 바꿀 수 없는 다른 요소가 결정해 줄 때까지 관심 정도만 주면 된다. 나는 그게 밀도 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독서, 공부, 글쓰기, 투자 등등 뭐 하나 계획대로 된 게 없다. 실제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것도 아니고 목표치를 세운 것도 아니라 비교군이 없어 더 답답한 상태인데 그냥 마음속 양심에게만 물어봐도 나는 게으르고 낙관적으로 올해를 버텨냈고 딱히 날카롭게 살아가지 못했다. 이직에 너무 큰 에너지를 쏟은 보상심리라고도 볼 수 있고, 이사라는 큰 이벤트를 안정화하는 기간 동안 우물쭈물한 결과이기도 하다. 근데 뭐 다 변명이다. 마음 굳게 먹고 하려면 다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누누이 느끼지만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키지 않으면 나를 구렁텅이로 밀어 넣어줄 시스템. 만약 매주 일요일 8시에 주간 회고록을 업로드하지 않으면 내 사진첩에서 랜덤으로 10개의 사진이 X에 업로드된다면, 내 월렛에서 잡코인을 10만 원 치 매수하는 시스템이 있다면 내가 안 했을까? 뭐라도 올렸을 것이다.

우물쭈물한 이유는 내가 우물쭈물한 성격이기 때문이고 나는 이대로 30년을 넘게 살았기 때문에 쉽게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고쳐지더라도 금세 돌아올게 뻔하다.

올해는 유난히도 돈을 막 쓴 것 같단 말이지. 실제 가계부 데이터를 보니 맞다. 심지어 들쭉날쭉하기까지 하다. 가족행사나 여행, 연애, 경조사 등 아까지 말아야 하는 돈이 있었고, 배달음식이나 술값같이 아껴야 하는 돈을 구분하고 그중 아껴야 할 돈만 아끼면 된다. 아끼지 말아야 할 돈을 아끼면 내 건강이나 가족, 평판 같은 것을 챙기지 못하니까.

연말의 환율 파동에 따른 내 자산 및 원화 가치 하락은 다른 맥락에서 돈을 소중히 하지 못한 사례다. 공부가 부족했고 아무리 천재지변 같은 계엄령이더라도 미리 리스크 햇징을 했어야 했는데 못한 내 잘못이 크다. 우유부단함이 한몫했지 뭐.

TED를 틀고 철봉에 매달려 있었다면 내가 이런 소리 하겠나. 나는 올해 처음으로 티브이를 사서 밥 먹을 때, 잘 때, 쉴 때 봐댔다. 그냥 유튜브를 휴대폰으로 보다가 TV로 보는 수준으로밖에 활용하지 못한 건데 할 말이 없다. 내가 예전이나 지금이나 TV를 많이 보시는 아빠를 보며 절대 나는 커서 집에 TV를 두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지금 써보니 너무 편하고 쾌적하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많이 사라졌다. 반대로 삶이 쾌적해진 만큼 내가 바보가 된 느낌이다. 내 시간과 집중력이라는 재화를 무한으로 잡아먹는 요물이다.

TV 볼 시간에 더 활달하게 움직이고 다른 공간에서 사람들과 액티비티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혹은 혼자 책을 읽거나 글을 썼다면 올해 한 해동안 많은 결과를 냈을 텐데.

퍼스널 브랜딩에 대한 goal은 명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적극적으로 임하지 못했다. 사는 게 더 급하다곤 하다만 그렇게 급하지도 않았는데. 그냥 수동적이었던 것이다. 콘퍼런스를 찾아다니고, 후기를 공유하고 내가 알고 싶은 분야의 고수를 찾아가 배우는 활동을 나는 안 했다.

내 멘티들에게는 링크드인으로 적극적인 구애활동을 하라고 해놓고 정작 나는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못쓴 내용도 하나 있긴 한데, 이건 그냥 생각만 해야겠다. 일 년밖에 안되는데 이렇게 후회를 많이 하다니. 내년엔 조금만 후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