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회고록] 5. 인간관계에 대하여
사람 속은 정말 어렵다.
언제는 안이랬냐만은, 올해만큼 인간관계에서 현타가 온 적은 없던 것 같아요. 누가 아무리 힘들다, 힘들다 해도 몸이 힘들거나 주변 환경이 힘든 건 버틸 수 있겠는데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이건 뭐 돌이키기도 힘들고 버텨낼 재간이 없잖아요.
제가 몇 개월간 그랬던 것 같아요. 저와 같은 방향을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팀원들과 소리 없는 마찰 이 많았거든요. 혼자 속앓이를 오래 했는데, 그 과정에서 제 정서적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모했어요. 그래서 몇 달 만에 번아웃이 온 것 같기도 하고요. 올해 회고에서 유일하게 혹독한 평점을 부여할 부분인 인간관계 입니다.
정서적 뱀파이어(Emotional Vampire)
정서적 뱀파이어는 미국의 학자 앨버트 번스타인의 오래된 심리이론으로, 사람의 정서적 에너지를 흡혈귀처럼 뺏어가는 유형의 사람들 을 말합니다. 지난달쯤, 제가 인간관계로 많이 힘들어하고 있던 시기에 봤던 아티클인데 저한테 큰 울림을 줬어요. 섬뜩하더라고요. 혹시 내가 이런 사람인가?
그래도 내심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물어봤는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조언해줬기 때문이에요. 되이려 팀원들은 이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을 확률이 높다고. 사실 현재 상황에 대해 저에게 직접적으로 표현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기우일 수 있어요. 신입이 더 많은 우리 팀의 상황을 놓고 보면 적응하느라 바빠서 신경을 못 쓸 수도 있는 것이고요.
그래서 지금 제가 느끼는 불편함의 원인이 다른 문제에 있다면 정말 감사할 것 같아요. 그럼 제가 이 조직을 떠나거나 그 문제가 해결되고 팀원들의 의지가 여유와 함께 차오를 시기에는 그 불편함이 많이 사라지지 않을까 싶으니까요. 진심으로, 제가 정서적 뱀파이어가 아니었길 바라고 앞으로도 이런 부류의 리더가 되지 않도록 노력할 거예요.
기술적 정복자(Technical Conquerer)
이 용어도 제가 몇몇 시스템을 도입하고, 변화를 주도하고 있을 때 우연히 본 아티클에서 배운 지혜예요. 우리가 새로운 집단에 가거나, 새롭게 리더가 되었을 때, 그 집단이 늘 해왔던 방식이나 문화 및 기술에 대해 옳고 그름만을 따져서 급진적으로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 을 기술적 정복자라고 부릅니다.
세상엔 다양한 문화가 있고, 방법이 있고, 기술이 있습니다. 누가 봐도 항상 우월한 어떤 개념이 있을 순 있겠죠.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존 구성원들이 이뤄놓은 것들에 대한 존중과 감사 가 기반이 되어야 비로소 변화를 설득할 수 있고 그 속도와 상관없이 점진적으로 좋은 방향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AI들과 일하고 있었다면 아마 기술적 정복자라는 용어 자체가 생겨나지 않았을 거예요. 인간관계에 의존한 지금 우리가 일하는 일터에서 옳고 그름만을 따지다 보면 인간관계라는 중요한 의존변수가 안 좋은 방향으로 흔들리게 돼요. 저는 명확힌 모르지만 어렴풋이 이렇게 흔들린 인간관계를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었어요. 이번 경험으로 저는 아마 비즈니스가 직접 지시하지 않는 한, 기존과 같이 급진적인 변화는 지양할 것 같아요.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
올해 아주 핫한 키워드였죠. 조용한 사직은 MZ세대를 중심으로 회자된, “회사가 시킨 일만 한다 ”는 뜻의 용어입니다. 뜻만 해석하면 맞는 말이긴 합니다. 우리는 급여를 받고 부여된 업무를 수행합니다. 사실 그게 다예요. 하지만 우리가 더 일을 하거나 자기 계발을 통해 스스로를 발전시킨다면 나중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잘 살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추가적인 고생을 자처합니다.
하지만 요즘 시대상이, 그런다고 잘 살지 않더라라는 안 좋은 예시를 많이 보여줘서 변질되었다고 봐요. 하지만 지식노동자 들은 더 고민하고, 더 실행할수록 성장하고 그 속도에는 가속도가 있어서 능률이 선형보다 가파른 속도로 증가합니다. 그래서 현재 우리 눈앞의 마쉬멜로우가 너무 작아보일 수 있다는 말과 같다고 생각해요. 기성세대에 비해 박탈감도 커진 느낌도 있고요. 그래서 나름 이해는 됩니다.
저는 현 직장에서 조용한 사직을 자처하는 동료들을 몇 봤어요. 제 개인성향과 정반대이기 때문에 저는 그들을 존중하지 않았지만 ,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반대 입장이었다면 일을 벌이는 사람이나 일벌레로 치부하고 저또한 존중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이건 명백히 잘못된 것입니다. 옳게 된 상황은 서로 존중하고 업무가 잡음 없이 진행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조용한 사직자들도 여러 선택지 중 최선의 선택을 한 것 이고,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알량한 가치관 때문에 비즈니스가 흔들리고, 사람 관계가 무너지면 그것만큼 비효율적인 게 없으니까요.
그것마저도 존중해라
이것도 회사에서 진행한 리더와의 대화에서 얻은 인사이트인데요, 그것마저도 존중 하라는 내용입니다. 돌이켜보니 저는 몇몇 부류의 사람들을 태도를인정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위에서 설명한 조용한 사직러들입니다. 애초에 저와 결이 맞지 않았고, 실제 실무 페이즈에서도 저에게 일이 몰리게 되거나 이기적으로 소통을 회피 하는 사람들을 봤을 때 내적으로 분노했고, 이 사람들은 왜 이러지 하고 속으로 불만만 내놓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 사람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그런 태도를 보였든 우리는 일단 그 사람의 결정에 대해 존중 해야 합니다. 이만큼만 하겠다는 결정이 가지고 올 결과는 본인이 감당 할 것이고, 리더들도 그런 모습을 모르는 게 아니니 마음 편히 먹으라고요. 결론은 그 사람의 연봉협상에 실패하거나 해고바람에 실려 떠나갈 테니 가만있어라가 아니라, 당신이 누구와 대화하든 그 상황에서 불편해하지 말고, 일단은 집중해야 할 것에 집중 하라는 뜻입니다.
살면서 존중이라는 단어는 셀 수 없이 들어왔는데, 이 대화에서 존중의 느낌은 약간 차갑고, 섬뜩 했어요. 새로웠고요. 하지만 앞으로의 인간관계에 있어 정말 중요한 인사이트가 될 것이라 생각해요.
소통의 방법
회사에서 1:1로 몇몇 리더들과 이야기했을 때 들었던 말 중에 충격적이었던 것 하나는 제가 동료들과 했던 몇몇 대화에서 명령형 어투 를 사용한 것을 봤다고 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그 사람에게 보인게 그 정도인거지 실상은 더 많았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합니다. 저는 제 어투가 그렇게 들렸다는 사실에 적잖게 충격받았어요.
저는 지난 몇 년간 군더더기 없이 말하도록 훈련받았고, 이행해 왔어요. 이게 맞는 줄 알았고 이것저것 미사여구를 붙이거나 문법에 맞지는 않지만 서비스업종에서 흔히 사용하는 어투를 사용하는 것을 꺼려했거든요. 가령 00 하는 게 맞을까요? 와 같은 거요. 00가 맞나요? 맞습니까?라고 하면 되는걸 왜 저렇게 말할까.. 항상 의아하고 지양했는데, 이런 모습이 하나하나 모여서 긴박한 상황이나 일이 잘못되고 있을 때 툭툭 튀어나왔나 봐요. 저는 지금까지 무례하게 대화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이게 명령형이나 상급자가 하급자를 대하듯 대화한다고 여겨졌다고 판단됩니다.
뭐가 맞는지 사실 판단이 잘 안 섭니다. 다른 요인이 있을지도 모르고, 진짜 제가 감정을 담아서 이야기했을지도 모르겠죠.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주변 사람들 중 한두 명이 이런 제 모습을 평소와 다르게 인지하고 잘못되었다 평가한다는 점입니다. 내년엔 현재의 제 상태를 변화시킬 방법을 구체적으로 계획해볼게요.
구밀복검
입에 꿀을 바르고 배에 칼을 숨긴다는 사자성어예요. 올해 이런 대화를 몇 번 경험했어요. 입술로는 달콤한 용어와 문장구조를 사용하지만 분명 날카로운 의미를 쏴대는 대화요. 만약 우리가 성숙하지 못해서 이런 대화 속의 칼날을 잡아내지 못한다면 그들의 의도대로 손 안 대고 코푸는 상황이 되겠지만 그 정도는 캐치해낼 수 있는 사람이 그런 대화를 들었을 땐 속내가 뻔히 보이는 상대방을 도저히 존중할 수 없어요.
회복탄력성(Resilience)
회복탄력성은 시련을 딛고 일어서서 이를 동력으로 더 큰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성질 로, 마음의 근력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회복탄력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인간대 인간의 관계에서 신뢰를 잃거나 서로 적대관계가 돼버릴 경우에 그 조직은 사람이라는 중요한 자원들이 불능에 빠지고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거나 일 자체가 교착되기 때문에 서둘러 해결해야 합니다.
저도 이런 불능의 상태에 있다고 느꼈었고 몇몇 관리자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서 적당히 스스로의 합의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직 딛고 일어나 모두와 더 단단한 관계로 만들진 못했지만 스스로는 교착상태에서 빠져나올 수는 있었어요.
어차피 정복할 수 없다.
사람 마음을 누가 정복할 수 있겠습니까. 올해 처음 만나는 부류의 사람들과 일하면서 여러 가지 케이스를 많이 배웠다고 생각하고 싶어요. 어쩌면 이번에 겪은 어려움들이 나중에 더 안 좋은 상황에서 빛을 발할지도 모르죠. 여하튼 사람 때문에 많이 속앓이 했는데, 어떤 리더분이 “당신은 스스로의 기준이 높아서 어떤 집단에 가도 만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해주셨는데 이거 듣고 많이 반성했던 것 같아요. 스스로의 기준을 너무 높게 몰아세우고 모두에게 이걸 비전이랍시고 제시한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폭력 일 수 있으니까 서로는 평생 이해할 수 없을거에요.
결국 이해와 존중이 기반이 된 커뮤니케이션 을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것이 제 앞으로의 커리어에서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할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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